<맨 오브 라만차> 김호영의 아름다운 도전
작성일2015.08.28
조회수18,973
Q 산초 역 제의가 들어왔을 때 처음에는 고민을 했다고 들었다. <맨 오브 라만차>는 배우라면 꼭 해보고 싶은 작품 아닌가?
그때가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에서 선보인 <태화강>을 연습하느라 울산을 왔다 갔다 할 때였다. 한 번 내려가면 2~3일씩은 있었다. 서울에서 연습하는 거였으면 좀 더 긍정적으로 생각했을 텐데, 아무래도 산초는 돈키호테와 계속 붙어서 하는 장면이 많은데 아무래도 연습에 많이 참여를 못할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작인 <마마 돈 크라이>를 통해서 관객들이 ‘연기를 잘한다’는 나의 의외성을 발견해줬다. (웃음) 그동안 나는 연기, 노래, 춤 중에서 연기를 제일 잘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관객들이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이유를 생각해보니까 이 작품에서는 여장을 안 했기 때문인거다. 성향은 비슷할 지라도 캐릭터의 개성이 다 다른 사람들로 연기를 했는데 관객들은 그냥 똑같이 여성스럽다는 카테고리 하나로 봐주시니까, 좀 씁쓸했다. 그래서 여기서 한 단계 차고 나가 이 전에는 하지 않았던 역할을 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오랜만에 대극장에서 여장이 아닌 역할을 해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게다가 이 작품은 작품성도 인정받았고 흥행도 보증되어 있고, 심지어 상대 역인 돈키호테 역할의 배우들이 워낙에 출중한 분들 아닌가. 그리고 지금까지 작품들이 밝은 쪽이 많아서 어둡고 비극적인 작품을 갈망하는 부분도 있었다. 그래서 '도전해보자'고 생각했고, 공연을 올린 지금에서는 '하길 잘했다'라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Q 어떤 점에서 '하길 잘했다'라는 생각이 드는가.
나는 그 누구보다 파이팅이 넘치는 사람이고, 꿈을 펼치는 것에 있어서 2등이라면 서러울 정도로 계획한 것이 있으면 빨리 실행에 옮기는 편이다. 그런데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요즘 들어 하는 일이 많다 보니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힘이 들었다.
그런데 이 작품이 주는 힘이 너무나 큰 거다. 이십 대 때는 잘 느끼지 못했던 꿈과 희망이라는 메시지가, 삼십 때 초반에 이 작품을 다시 보고 ‘이런 내용이었구나’라고 가깝게 다가왔고, 이번에 실제로 공연에 참여하면서 주인님인 돈키호테가 하는 이야기가 직격탄으로 날라오면서 꼭 나에게 하는 이야기 같았다. 예전 같았으면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대사, “세상이 미쳐 돌아갈 때 가만히 안주하고 있는 게 정상인 것 같으냐, 우리가 모두 라만차의 기사들이다.”같은, 그리고 ‘임파서블 드림’이란 넘버도 많은 남자 배우들이 행사할 때 부르는 노래 정도로 ‘좋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가사 하나 하나가 가슴에 박히며 다르게 다가왔다. 그런 점들을 깨달으니 무대에 서면 힐링이 됐다.
Q 산초라는 역할이 기존 배우의 이미지가 강한데 어떻게 표현하고 싶었나.
스완 연출이 가고자 하는 방향도 그랬고 나 또한 일부러 외형적인 것을 귀엽게 한다든지 일부러 웃기려고 하는 것을 배제하려고 했다. 산초라는 캐릭터에 웃음 코드가 많다 보니 자칫하면 줄거리와 상관없이 웃기려고 하면 얼마든지 웃길 수는 캐릭터지만 무엇보다 관객들이 돈키호테에게 집중하게끔 조력자 역할에 충실 하고자 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재미도 따라 온다고 생각했다. 극 중 알돈자가 산초에게 “네가 볼 때도 정상이 아닌 저 돈키호테라는 사람을 너는 왜 따라 다니냐”고 묻는 장면이 있다. 나는 산초가 자신보다 학식과 세상 경험이 많은 주인을 맹목적으로 믿고 따른다고 생각했다. 그를 향한 무한 애정이 관객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가도록 만들고 싶었다.
Q 인터미션 끝나고 호영씨 칭찬하는 소리 많이 들었다. 배우로서 체감하는 객석 반응은 어떤가?
공연 첫 날 어머니가 오셨는데 무척 신나시고, 나중에 “커튼콜 때 네가 박수소리가 제일 크더라”고 말하시면서 좋아하셨다. 기존에 공연을 많이 보시는 분들은 다른 느낌의 산초에 대해 거부감까지는 아니어도 기대 반, 의심 반 하는 생각으로 오실 텐데 사실 산초는 잘하고 아니고를 떠나서, 역할 자체가 관객들한테 사랑을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반은 이미 점수를 먹고 들어가 거기에 기대가는 점이 있다. 그래서 관객들이 점수를 후하게 주시는 것 같다.
Q 류정한, 조승우와 호흡을 맞춘다. 두 사람은 지금까지 돈키호테를 연기한 배우 중 이 작품을 대표하는 스타이기도 한데, 함께 연기해보니 어떤가.
함께 해보니, 관객들에게 사랑받고 인정받는 배우들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승우 형은 2007년 <렌트>에서 만난 적이 있지만 작품 하면서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다. 그래서 이번 만남이 무척 신선하고 작업을 하면서 놀란 점이 많다. 사실 그는 눈감고 해도 다 아는 건데, 절대 허투로 연습을 하지 않는다. 일주일 내내 연습을 하면 일주일 내내 실제 공연같이 연습을 한다. 이번 작품에 처음 참여하는 나는 그걸 따라갈 수 밖에 없는데 실전처럼 하니 빠르게 동화될 수 있었다. 그래서 굉장히 고마웠다. 조승우라는 배우가 표현하는 돈키호테는 내가 보지 못하는 세상에 대해서 마치 내 눈에 앞에 빔 프로젝트로 쏘듯이 그걸 보게끔 해주는 돈키호테다.
정한이 형과는 작품도 처음이고, 사석에서도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주변에서도 기대를 많이 하고 나 또한 기대가 많이 됐는데 처음 만난 정한이 형은 사람을 봉인해제 만드는 게 있다. 주변 사람들을 무척이나 편안하게 해준다. 그래서 처음 만나서 이야기 했을 때도 나이도 차이 나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부드럽고 로맨스 가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무대에서 가끔 눈이 마주칠 때가 있는데 눈으로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해준다. 그래서 옆에 있으면 힘이 된다. 그래서 나도 산초로서 옆에서 조금 더 챙겨줘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고, 저 사람이 나를 인간적으로 대해주는 것처럼 나 또한 열심히 그를 보필해야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Q 김호영하면 특유 에너지가 넘친다. 남들에게 주기만 하면 정작 본인은 어떻게 채우나?
예를 들어 요리 하는 걸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맛있는 음식을 해서 먹는 기쁨도 기쁨이지만 내가 요리한 것을 다른 사람이 먹고 좋아하면 그런 것에 더 기쁨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나는 후자 쪽이다. 나를 좋아해주고 나 때문에 기뻐하고 나를 재미있게 생각하고 신기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무한 에너지를 받는다. 그렇지만 바꿔 말해서 내가 뭘 했는데 상대방이 시큰둥하거나, “쟤 뭐야, 이상해”라고 하면 기운 빠진다. 가끔 힘들 때도 있지만 나의 존재를 인정해주니까 거기에 기운을 차리고 힘을 낼 수 있다.
Q 최근에 본인 이름 딴 회사도 차리고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하는데 행복한지 묻고 싶다.
<맨 오브 라만차>에서 세르반테스가 “세상이 미쳐 돌아갈 때 그냥 꿈과 희망을 포기하고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쓰레기 더미에서 보물을 찾는 것이 미친 짓처럼 보이냐.”고 묻는다. 사실 우리는 미친 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되려 거기서 뭔가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해보는 거다. 꿈은 손을 뻗어 보고 가봐야 아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또 꿈이라는 게 이뤄졌을 때 또 다른 꿈이 생기니까 꿈을 향해 갈 수 밖에 없다.
나이를 먹을수록 누구는 자신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지기도 하지만 나는 점점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지고 있다. 그래서 일을 할 때 무언가 안 따라주면 답답하다. 그게 그만큼 시간이 갈수록 경험이 쌓여서 그런 것 같다. 왜냐하면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면 ‘언젠가는 이뤄지겠지, 되겠지’ 하는 막연함만 있을 텐데 지금은 왜 매끄럽게 진행이 안 되는지 너무 잘 아니까 그게 속을 태운다. 행복한 건 행복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골머리 썩는 건 썩는다. 그런 게 없으면 어떻게 또 사는 게 재미가 있을까.
Q 앞으로 최종 꿈은 무엇인가?
배우로서는 계속 가겠지만 얼마 전에 생각이 좀 바뀌었다. 내가 뭘 잘 하는지 이제 정확하게 안 것이다. 예전에도 알았는데 그래도 늘 잘 해왔던 것이고 연기고 직업이 배우이기 때문에 다른 것은 그냥 '배우를 하면서 하자'라고 생각했다. 예전에는 '연기를 잘 배우가 되자'라고 했었다면 이제는 대한민국의 오프라 윈프리가 됐으면 좋겠다. 오프라 윈프리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지 않나. 그녀만의 프로그램도 있고 다양한 사회활동도 하고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다. 나 또한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그동안 사람들을 직접 만나는 컨텐츠를 많이 만들어오다 보니까 그것이 나와 잘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배우를 안 하는 것은 아니다. 나를 더 열심히 알리고 배우로서도 인정 받고 싶다. 그래서 그것을 발판으로 김호영의 컨텐츠가 널리 알려져 하나의 브랜드, 아이콘이 되면 좋겠다.
글: 강진이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jini21@interpark.com)
사진: 기준서(www.studiochoon.com), 오디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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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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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en**님 2015.08.30
호영산초가 알돈자에게 편지 얘기해주는 장면이 너무 재밌어서 그 장면보러 또 가고 싶어요^^ 전에도 몇몇 공연에서 호영배우님 봤지만 이번에 라만차로 완전 팬됐어요~화이팅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