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Flashback. 3] 풋내나는 소년들의 꽤 아픈 성장기, 뮤지컬 ‘화랑’
별들이 앉을 곳 없이 비좁게 선 밤. 소년들은 풋내나는 얼굴을 하고 킥킥대며 여자이야기로 밤을 새운다. ‘가슴 큰 여자’, ‘엄마 같은 여자’, ‘꽃냄새 나는 여자’ 등 저마다 취향도 다르다. 몸은 다 컸어도 아직 해보지 못한 일이 잔뜩 인 소년들은 서로의 숨결이 닿도록 가깝게 앉아 밤새 수다를 떤다. 그 사이, 해님이 성큼성큼 깨어 방으로 들고, 달님은 까닥까닥 졸다 눈치도 없이 낮달로 걸린다.
- 이 시대 소년들 공감할 만한 ‘성장기 감성’ 담았다
뮤지컬 ‘화랑’은 미성숙한 자아를 가진 소년들의 성장기를 그린다. MBC 드라마 ‘선덕여왕’에 등장했던 ‘화랑’은 강렬함과 남성적인 모습으로 인기를 끌었다. 그에 비해 이 작품은 미성숙한 소년으로서 ‘화랑’을 다룬 점이 인상적이다. 뮤지컬 ‘화랑’은 소년들의 도전, 실패, 불안, 갈등, 화해를 이른 아침 새벽별처럼 아릿하지만 희망찬 빛으로 그려낸다.
‘화랑’은 꽃 화(花), 사내 랑(郞)을 쓴다. 이 작품의 백미는 한자의 의미 그대로다. 꽃 같은 사내들이 내뿜는 에너지와 풋풋함이 살아 있다. 아직 연기력은 부족할지 몰라도 열의가 넘치는 젊은 배우들의 에너지는 풋사과처럼 설익은 듯 떫지만 상큼하다. 소재는 흥미롭다. 어린 사내들의 에너지도 넘친다. 하지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그다지 신선하지 않다.
뮤지컬 ‘화랑’은 사건의 시작부터 갈등까지 가는 과정이 길고 산만하다. 다섯 명의 소년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화랑이 된다. 그들은 사소한 오해로 갈등을 빚는다. '화랑‘들이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장면이 늘어져 후반부의 ’위기‘가 극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또한, 갈등을 일으키는 사건도 관객에게 익숙한 코드로 구성됐다. 엄마에 대한 반항, 자아 찾기, 성 정체성 고민 등이 EBS 청소년 성장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뮤지컬 ‘화랑’은 다섯 소년의 캐릭터를 설명하고 관객의 재미에 신경을 쓴 나머지 이야기의 스피드와 절정에 큰 힘을 쏟지 못했다. 마치 설익은 과육을 한입을 깨문 듯, 텁텁함과 씁쓸함이 입가에 남는다.
뮤지컬 ‘화랑’ 속의 캐릭터는 분명하고 개성 있다. 매력도 충분하다. 극 중 ‘기파랑’은 ‘어머니의 사랑을 갈구한다. 따뜻한 심성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문노’에 대한 묘한 질투도 엿보인다. 이처럼 각각의 캐릭터는 이 시대 소년들도 공감할 만한 감성이 그대로 반영됐다. 하지만 캐릭터 중심의 작품 해석은 오히려 이야기의 유기성을 떨어뜨렸다. 특히, '화랑'을 떠났던 '관랑'이 다시 돌아오는 부분은 그가 돌아오게 되는 극적 장치가 없다. 현실에서는 ‘우연’이 있지만 무대에서의 ‘우연’은 관객을 당황하게 한다. 이야기의 절정에서 결말로 넘어가는 부분이 갑작스러워 아쉽다.
- 서정적인 선율 위에 얹혀진 ‘아릿한’ 가사
뮤지컬 '화랑'의 음악은 꽤 탄탄하다. 소극장 뮤지컬답게 친근하고 익숙한 멜로디가 귀에 감긴다. '서라벌 슈퍼스타', '말 안 해도 아는 여자'의 넘버는 관객들이 어깨를 들썩이며 함께 즐길 수 있다. 사극이라는 장르적 한계에 얽매이지 않고 랩과 현대적 리듬을 사용했다. 다섯 명의 소년들이 발을 구르며 부르는 '화랑의 정신'은 극이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입가에 잔상을 남기는 곡이다.
여성 작가 특유의 섬세한 가사가 돋보이는 '모든 게 지나면'과 '기억하니'와 같은 곡들은 아주 서정적이다. 국악기의 아련하고 서글픈 음률 위에 성장통을 담은 아릿한 가사가 서투른 소년들의 감정 표현을 잘 드러냈다.
안무는 지난 시즌에 비해 더 디테일해 졌지만 그만큼 전체적으로 산만했다. 이번 공연은 손이나 발을 이용한 안무 위주였다. 디테일한 안무는 전체적인 그림에 일체감을 주지 못했다. 반면, 무술 장면은 예상보다 훨씬 화려하다. 나무로 만들어진 검의 파편이 날아다닐 정도로 격렬하다. 무술의 합도 잘 맞았다. 오랫동안 뮤지컬 '화랑'을 지키며 훈련해 온 배우들의 기량이 돋보였다.
- 신인배우들의 집합소, 얼굴에서 ‘반짝반짝’ 빛이 난다
뮤지컬 ‘화랑’은 독특하게도 신인 배우들이 빛을 발하는 공연이다. 이제 막 ‘남자’로 성장해가는 ‘화랑’처럼 어리고 서툰 배우가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말간 얼굴에 아직 소년티를 벗지 못한 배우들이 무대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얼굴에서 ‘반짝반짝’ 빛이 난다. 이제 막 연기자로서 한 걸음 내딛은 배우들은 남자로서 한 단계 성장한 ‘화랑’들과 묘하게 오버랩 되며 상승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의 공연은 이번 ‘화랑’을 통해 데뷔하는 ‘김창현’을 제외하고 모두 오래도록 뮤지컬 '화랑‘을 지켜온 배우들이다. 이번 공연이 처음은 아니더라도 ’화랑‘을 통해 첫 데뷔를 치른 배우들이 대부분이다. 특히, 이번 공연에 참여한 고재범, 원성준, 최동호 등은 초연을 지킨 멤버다.
뮤지컬 ‘화랑’은 서투르지만 생명력이 넘치는 작품이다. ‘반짝반짝’ 신인 배우들과 ‘화랑’의 이미지는 어딘지 많이 닮아있다. ‘화랑’이라는 존재를 무대 위로 불러온 점에서 박수를 보내고 싶다. 작품 속 ‘화랑’들은 ‘상처가 나고, 다시 아물고, 또 그 위에 상처가 나고’를 반복해 성장한다. 뮤지컬 '화랑'은 작품 속에 담긴 감성이 좋은 공연이다. 그런 만큼 뮤지컬 ‘화랑’도 상처와 성장을 통해 더 좋은 모습으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뉴스테이지 정지혜 기자 newstag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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