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현장] LDP무용단 ‘세상의 소리를 표현한다’

가만히 있는 사람은 없었다. 다리를 벌려 스트레칭 하거나 파트너와 동작을 맞춰본다. 몇몇은 바닥에 누워 발목을 좌우로 흔들어 몸의 촉수를 깨우고, 누구는 커튼 속에서 옷을 갈이 입고 쑥 나오다 멋쩍게 웃는다. 연습실을 생기로 가득 채우는 이 자유분방한 젊은이들이 안무가가 들어와 자리에 앉으면 ‘시작’의 신호도 없이 제자리를 찾아 바로 ‘스탠 바이’를 만든다. 이들이 바로 LDP(Laboratory Dance Project)의 무용수들이었다.

Sound Express
올해로 창단 7년째를 맞는 LDP무용단이 정기공연을 앞두고 있다. 2006년, 2007년 베니스 비엔날레 무용제 2년 연속 공식 초청, 6회 정기공연이었던 ‘Boulevard’로 2006년 올해의 예술상 수상, 김판선, 차진엽, 김영진 등 단원들의 활발한 안무가 활동과 콩쿨 수상 등 길지 않은 역사를 채우는 이력들은 충분히 화려하다.

오는 3월 7일부터 이틀간 펼쳐지는 제8회 정기공연은 2008년 LDP무용단이 선보이는 첫 무대. ‘Sound Express’라는 제목의 1시간 남짓한 이 작품은 세상의 모든 소리로부터 반응하는 몸짓으로 무용단을 만든 안무가 미나 유가 총 지휘를 맡았다.

무대는 김판선의 독무로 시작한다. 오랜 기간의 수련과 연습만이 만들 수 있는 몸의 잔근육들, 그것이 이뤄내는 섬세한 굴곡들이 힘의 강약에 실려 절도와 스피드로 태어난다. 감미로운 바이올린의 선율에 이어지는 일렉트로닉 사운드는 곧 무너져 내릴 것 만 같은 세상의 혼돈을 느끼게 해 주며, 이어지는 정겨운 아코디언의 4박자 리듬과 젊음의 동작은 관객들 미간의 긴장을 풀어준다. 팝과 펑키, 서양의 컨츄리송에 우주적 이미지의 사운드까지 공연 내내 다양한 음악들은 기다란 급행열차(express)처럼 줄줄이 이어져 그 느낌이 무대 위에 온몸으로 표현(Express)되고 있다.



마이크, 대사, 랩, 롤러브레이드, 악기
세상의 소음과 혼자만의 주절거림처럼 절대적 미의 기준을 벗어난 일상의 소리들도 무대 위에 재현된다. 무용수들이 마이크를 잡고 또 빼앗으며 누군가에게 토로하고 외치는 절규와 혼돈의 움직임은 타인에게 지배당하고 있는 현대인의 자화상이다. 로봇처럼 스스로는 자기 손 하나 까닥할 수 없는 무용수들의 동작은 보는 이들을 씁쓸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무용수들이 노래나 악기 연주로 직접 사운드를 만드는 모습은 무용 공연에서 흔치 않은 장면이다. gloomy Sunday를 부르는 무용수와 롤러브레이드를 타고 무대를 휘휘 젓는 또 한 명의 몸짓은 엄숙함을 넘어선 미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랩과 노래, 롤러브레이드 등 무용수 개인의 특기도 십분 살린 이번 무대는 여느 현대무용의 공연과는 사뭇 다를 것이 분명하다. 탄탄한 실력과 넘치는 에너지, 실험적인 무대를 선보이지만 누구보다 대중들의 사랑을 받아온 이번 LDP무용단의 정기공연이 또 어떤 참신함을 만들어 낼 지 기대해 본다.

LDP무용단 'Sound Express' 공연 연습장면

 

 

 

 

 

[미니 인터뷰] 제대로, 그 아름다움을 찬미한다 - 안무가 ‘미나 유’
LDP무용단을 창단했으며 10년 넘게 한국예술종합학교의 교수로 재직 중인 안무가 미나 유. 이번 공연의 총 안무를 맡은 그녀는 연습 전이나 중간, 그리고 끝난 후 무용수들의 잘못을 지적할 때에도 큰 목소리 한번이 없다. 한국 현대무용의 1세대이자 해외를 무대로 기량을 펼친 무용가로서, 환갑을 훌쩍 넘긴 그녀를 현장에 있게 한 힘은 무엇일까. 눈빛이 반짝.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깊은 울림에서 나오는 카리스마가 빛을 발한다.

"우리는 많은 소리를 들어요. 하지만 표현에는 매우 서툴죠. 로봇처럼 누가 해주지 않으면 안되고, 상황에 따라 억지로 내 감정과 다른 표정이나 행동을 할 때가 많잖아요. 이들을 대신해서 무용수들이 무대 위에서 소리에 따라 즉흥적인 감정들을 표현해 주는 것이 바로 이번 공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화여대 무용과 1회 입학생인 그녀는 유학 생활과 오랜 해외 공연을 통해 무용가로 활동하는 동시에 안무가이자 독일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 활동도 했다. 한예종의 교단 자리 제안은 ‘내가 무대를 버렸을 때만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학생들에게 줄 수 있다’는 생각과 무용가로서의 욕심이 충돌하게 되어 짧지 않은 고민의 시간을 갖기도 했단다.

“인도에 가서 마음 수련까지 하고 왔죠. 언젠가는 고국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오랜 다짐이 고개를 들더라구요. 어차피 가르칠 거라면 한국의 학생들에게 제 모든걸 주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지도 생활 중 탄탄한 기본기를 쌓고 가능성이 충분한 한국의 젊은 무용가들이 그 기량을 펼칠 곳이 그리 많지 않음을 깨닫는다. 고전무용이나 전통을 제외하고 현대 무용을 고유로 하는 단체는 전무 하다시피 한 그 때 LDP무용단을 창단한 것이다.

“LDP는 제가 학생이었을 때부터 생각한 무용단 이름이었어요. Laboratory라는 말이 가진 실험성, 작은 변화에도 다르게 나오는 모습들, 이것이 우리 무용단이 생각하고 추구해 오고 있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간의 활동을 중간평가 하면 몇 점을 줄 수 있겠냐는 물음에 ‘무용수들 저마다 개별 활동도 하고 있고, 끊임없이 해외 무대로의 진출도 이어진다’며 ‘국내 유수의 콩쿨에서 큰 상을 받는 경우도 많고 또 밖에 나가서도 그 기량을 인정받고 있으니 이만하면 괜찮지 않냐’는 신중한 대답이 돌아온다. 현대 무용의 흐름이 아시아, 그 중에서도 한국으로 옮겨지고 있다는 말에 더하여 한국인 무용수로서의 기본이 다져진 후에야 ‘인터내셔널’이 있는 것임을 힘주어 강조하는 그녀. 이 작은 거인이 무용계에 일으키는 작지 않은 파장은 다 이유가 있는 것이었다.
 


글 : 황선아(인터파크ENT 공연기획팀 suna1@interpark.com)
사진 : 다큐멘터리 허브(club.cyworld.com/docuher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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