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르담 드 파리 - ANAKE 운명의 여신-노트르담 성당(4)

2년 전에 학회참석차 들렀던 파리의 마지막 여정지가 노트르담 (Notre-Dame)성당이었다. 노트르담 성당에 대한 첫인상은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주던 오후의 햇살과 같은 넉넉함과 자유였다. 예배당 의자에 앉아 들었던 노트르담만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전해주듯 속삭거림과도 같은 파이프 오르간 연주는 주변을 흐르던 모든 움직임들을 순간 멈추게 하는 듯 했다. 마치 시간 속 여행을 떠나기 직전의 순간처럼 말이다. ‘우리의 귀부인’이라는 의미이며 성모마리아를 지칭하는 노트르담은 아기 예수를 품에 안은 성모마리아처럼 콰지모도의 안식처가 되어 주었으며 ‘노트르담 드 파리’의 긴 여정이 시작된 동기와 무대를 제공해 주었다. 중세 교회의 권위를 보여주는 건물로 1163년부터 3세기에 걸쳐 완성된 대표적인 고딕양식의 대성당이다. 고딕의 유래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예술가들이 중세 건축을 야만족인 고트 (Goth)인이 가지고 온 것이라고 비난한 데서 유래된 미술사 및 비평 용어이다. 영국에서 ‘Gothick’ 이란 단어는 ‘재미없는’, ‘기묘한’ 혹은 고전적 규범과 반대되는 것이란 의미로 17세기와 18세기 작가들이 사용해 왔다. 그러나 영국 골동품 애호가들이 중세 기념물에 관심을 나타내기 시작하면서 점차로 경멸적인 의미에서 벗어나 건축에서 특히 성당 건축에서 그 평가를 받게 되었고 더불어 함께 형성된 장식, 조각, 회화, 공예에 이르기까지 총괄적으로 확산되어 적용되었다. 고딕 건축의 특징은 장식판자를 붙일 수도 있는 기둥과 리브 골조 구조 (ribbed vault) 와 뾰족한 아치를 도입함으로써 외부 압력을 경감시켰다. 또한 부연부벽 (flying buttess), 뾰족탑, 화려한 색유리 장식 등은 기능적 장점 외에도 형태상 상승감을 강조하는 아름다움을 배가 시켰다. 그 후 쇠퇴기를 거친 후 18세기에 고딕 양식의 부활이 시작되고 19세기 초의 양식은 종교적 부활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19세기 빅토르 위고에 의해 노트르담 성당 역시 전 세계 사람들 마음속에 되살아 나게 된 것이다. 파리의 중심부를 가로 지르는 센강의 시테섬에 위치한 노트르담 성당은 원래 고대 로마인들이 제사를 지내는 장소로 4세기 경에 카톨릭이 프랑스 국교로 지정되면서 성당이 만들어 졌다. 1163년 모리스 드 쉴리 (Maurice de Sully) 파리 주교에 의하여 건립이 계획되었으며 교황 알렉산더 3세가 건물의 초석을 쌓았다. 정면 탑 높이 69미터 (m), 폭 48미터, 중앙홀의 높이 33미터의 거대한 규모를 가지고 있으며 사각형의 쌍탑 사이에 자리한 첨탑 중앙에는 ‘프랑스의 보석’이라 불리는 스테인드 글래스로 장식된 ‘장미의 창’이 있다. 남쪽 탑에는 유명한 임마누엘 종이 있는데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콰지모도가 울리던 종으로 무게 13톤의 이 종은 지금도 중요한 행사 때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노트르담 성당은 17세기에 이르러 고딕 양식의 쇠퇴와 함께 새롭게 등장한 바로크 양식으로 성당의 상당부분 대체되기도 하였다. 또한 프랑스 혁명 무렵에 장식품들과 조각상 등이 제거되기도 하는 수모를 겪었다. 혁명 이후에 카톨릭을 교회에 다시금 들여온 사람은 나폴레옹으로 그는 노트르담 성당에서 화려한 황제 대관식을 열었다. 그 후 1830년대 즘에 붕괴될 위험에 처해진 성당은 빅토르 위고가 1831년에 발표한 ‘노르트담 드 파리’의 인기를 타고 프랑스 정부와 대중들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비올레 르 뒥 (Viollet-le-Duc)에 의해서 성당 건물의 대대적인 복구 작업이 이루어져 1845년에 새롭게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이다. 7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노트르담 성당은 중세시대 프랑스 왕권의 상징 역할을 했으며 프랑스 혁명, 공화정 등의 프랑스 변화를 지켜본 프랑스 역사의 증언이기도 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고딕양식의 시대이며 교회의 권력이 세상의 중심에 있고 집시들에 대한 대우가 혹독했던 15세기를 배경으로 뮤지컬 속의 노트르담은 당시 파리사람들의 생활상을 볼 수 있는 무대 역할을 훌륭하게 하고 있다. 노트르담은 20여년동안 콰지모도를 세상에서 보호해주었고 위기에 처한 에스메랄다를 품어주었으며 사랑에 괴로워하던 프롤로의 최후를 바라보았다. 콰지모도가 치는 종소리에 깨어나고 빛을 발산하던 노트르담은 그가 사라진 자리에 빅토르 위고 같은 그 누군가에게 발견되어 다시 세상에 빛을 발하고 싶은 마음으로 ‘ANANKE’를 남기고 침묵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혹은 자신을 진정 사랑해줄 수 있고 자신이 감싸 안아줄 수 있는 또 다른 콰지모도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 글 : 최회련(대학강사 / annais97@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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