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친구아이가? 웃기는 소리…
작성일2004.09.07
조회수8,246
흔히 남자들의 우정은 여자들보다 ‘찐하다’고 한다. 여자들은 남자친구를 사귀거나 결혼하면 우정이 끝나는데 비해 남자는 사회생활을 할수록 더 깊어진대나. 과연 그럴까.
연극 ‘아트’는 남자들의 우정이 세상에 떠도는 것만큼 그리 편하거나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무대에 불이 켜지면 뒷 벽에 흰 패널이 하나 걸려 있다. 잘나가는 청담동 피부과 의사 수현(이남희)이 무려 1억8000만원을 주고 산 ‘앙트로와’라는 현대 추상화가의 그림이다. 지방대 교수인 규태(정보석)는 그저 흰 판때기로밖에 안보이는 그림을 산 수현이 지적 허영을 부리는 것으로 본다. 둘 사이는 서먹해지고 또다른 친구인 문방구 사장 덕수(유연수)에게 각각의 입장을 털어놓고 우유부단한 덕수는 양쪽을 중재하다 무시받는다.
20년지기 친구라는 이들은 친구라는 이유로 서로를 이해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야만 한다는 당연함을 가져왔다. 하지만 그림 한 점 때문에 서로에 대한 질투와 서운함이 한번에 폭발하고 바닥까지 발가벗겨진다. 이들은 우정을 위해 그림 위에 펜으로 ‘스키 타는 사람’을 그림으로써 금이 갔던 우정을 붙인다.
하지만 이들의 우정은 정말 회복됐을까. 홈쇼핑에서 파는 강력 지우개로 지워도 희미하게 자국이 남는 것처럼 이들도 가슴 속 깊숙이 앙금을 감춰놓고 있는 것은 아닌지.
프랑스 작가 야스미나 레자가 쓴 이 작품은 현대 추상화를 놓고 벌이는 세 남자의 논쟁 때문에 매우 지적인 희곡으로 인식돼 왔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1월 예술의전당과 같은 해 5월 제일화재 세실극장에서 공연돼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이 작품을 연출한 황재헌은 “겉으로 보면 예술적 취향을 논하는 것 같지만 사실 친구들 사이의 관계를 묻고 있는 대중극”이라고 설명했다. 여성인 작가가 ‘서로를 존중한다’ ‘상대의 취향을 인정한다’ ‘의리있다’ 등으로 포장된 남자들의 우정에 마음껏 비웃음을 퍼붓고 있는 코미디라는 것.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대사와 방백이 재미있는 이 작품은 화∼일요일 가운데 화·목·토 공연에는 11년만에 연극무대에 복귀하는 정보석,대학로의 연기파 배우 이남희,정감있고 구수한 연기를 자랑하는 유연수가 호흡을 맞춘다. 또 수·금·일에는 자타 공인 ‘멀티 배우’ 권해효,에너지가 넘치는 조희봉,노련한 연기를 뽐내는 이대연이 앙상블을 이룬다. 대학로 스타 배우들 사이에 낀 정보석은 TV나 영화에서 보여졌던 덤덤한 신사 이미지를 벗고 된장냄새가 묻어나는 연기로 관객들의 웃음을 이끌어내고 있다.
국민일보/ 장지영 기자
[ⓒ플레이DB m.playdb.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플레이DB m.playdb.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