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자석] 가슴 먹먹해지는 연극 한 편
세상을 살면서 타인과 섞이기란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타인에 포함되기 위해 자신을 누르는 방법을 택한다. 연극 [나쁜자석]은 ‘타인(친구)에게 다가가기 위해 자성을 없앤’ 한 아이와 그를 기억하는 친구들의 이야기다.
바닷가에서 살고 있는 세 명의 9살 배기 악동들. 이들 앞에 보통 9살 같지 않은 아이 원석이 나타난다. 복화술사인 아버지 밑에서 기가 죽어 자란 그는 보통 그 나이 때 아이보다 깊은 감수성과 글쓰기 감각을 지녔다. 원석은 무리의 대장 격인 민호의 호의로 이들 무리에 끼게 된다.
어느새 세월은 흘러 이들 넷은 고등학생이 되어 밴드를 결성한다. 하지만 워낙 ‘다른’ 감성을 지닌 원석에 대해 불만을 품은 나머지 아이들은 그가 밴드에서 빠져주길 원하고, 원석은 폐교에 불을 지르고 사라진다. 그리고 또 십년 뒤, 각자 흩어졌던 세 명의 친구들이 다시 모인다. 원석이 남긴 동화를 출판하게 되면서 다시 만난 그들은 각각 다르게 원석을 기억한다.
연극은 성인이 돼서 다시 만난 친구들에 이어 바로 그들의 어린 시절을 비춰준다. 타임캡슐에 소중한 물건을 묻던 9살의 그들은 그저 아이였다. 하교길에 바닷가에서 놀며 만화영화에 열광하는 악동. 19살의 그들은 조금 달라져 있었다. 자신과 다른 한 아이를 무리에서 빼고 싶어했고, 자신만의 비밀이 생겼으며 ‘한 사건’으로 인해 영영 다른 길을 걷게 됐다. 그리고 29살.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서로 많이 다른 모습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때론 서로에게 불편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아킬레스건과 다름없는 오래 전 친구를 다시 화두에 올린다. 그리고 갈등하고 괴로워한다. 원석은 왜 자신의 몸을 절벽 아래로 떠밀었을까. 그는 단순히 사회부적응자였을까, 아님 천재 동화작가였을까. 그것도 아니면 그저 그들의 어렸을 적 친구였을까.
[나쁜자석]은 쉬운 연극은 아니다. 집중해서 대사 하나하나를 곱씹어야 하고, 자주 과거와 현재를 오가기 때문에 방심하면 흐름을 놓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대중을 배려하지 않은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 연극도 아니다. ‘우정’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고, 더 넓게는 인간과 인간의 거리와 외로움, 기억에 대해 진지하게 말을 거는 작품이다.
배우들의 연기는 이 작품의 생명이다. 배우들은 9살 어린아이부터, 혈기가 넘치다 못해 과격한 19살 고등학생, 그리고 사회인이 된 29살을 모두 소화해야 하기 때문. 오랜만에 연극무대에 복귀한 김영민을 비롯해 정원조, 김동현, 곽자형 등 출연진들은 안정적인 연기를 펼쳐 극 몰입도를 높여준다. 극 중 원석이 나래이션 하는 두 편의 동화는 이 작품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동화 속에 원석의 자아와 세계가 녹아있으니 눈 여겨 보는 것도 팁일 것. 겨울의 문턱에 들어선 요즘, 진중한 연극 한 편으로 추천되는 연극이다.
글 : 송지혜(song@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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