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위의 바이올린> 삶, 위태함을 딛고 희망을 이야기 하는 것

딸의 결혼식을 앞두고, 어머니는 전날 울지만 아버지는 다음 날 운다고들 한다. 결혼을 통해 다른 남자와 생을 시작하는 딸의 손을 끝까지 잡고 있는 사람도 아버지이니 만큼, 딸을 향한 아버지의 애틋한 마음이란 아들에게 갖는 것과는 사뭇 다른 것이라 짐작이 된다.

뮤지컬 <지붕위의 바이올린>은 딸 가진 부모라면, 특히 아버지라면 결코 재미만으로 봐 지는 작품은 아닐 것이다. 무려 딸을 다섯이나 두어서 적어도 다섯 번의 이별은 예고되어 있는 한 아버지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1900년대 초 우크라이나의 작고 가난한 유태인 마을에 모여 사는 소박한 이 사람들은 나라도 없고, 땅도 없어 이곳 저곳을 떠돌지만 전통을 중시하며 뿌리를 잊지 않으려 한다. 어른들이 지어준 짝과 결혼하는 것 역시 전통의 한 부분. 하지만 변화의 바람이 분다. 오랜시간 사랑해 온 사람과의 결혼, 급진주의와의 결혼, 그리고 허락하지 않은 사람과의 결혼 등 새 시대 속에 딸들의 선언은 하루 종일 다리가 부러진 노새 대신 우유통이 든 수레를 끌며 힘들게 살아가는 아버지를 더욱 곤란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 무엇이 문제인가. 낙천적이며 마음이 여린 아버지 테비에는 늘 딸의 편에서 자식들을 품어주지 않는가.

1964년 브로드웨이 초연 이후 약 45년이 지난 지금에 한국에서 <지붕위의 바이올린>을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작품이 ‘아버지와 딸’이라는 인류애적인 부분과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나라 없고, 땅도 없어 봤으며 가장의 이름으로 한 가족을 이끌어 왔던 우리네와 그 모습이 참 많이 닳아 있는 것도 한 까닭이 될 것이다.

작품이 가진 내용에 더하여 이번 공연에서 더욱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저물어 가는 노을빛이 가득한, 자욱한 안개로 더욱 푸르게 빛나는 하늘을 가진 무대일 것이다. 군데군데 부서진 낡은 지붕 위에서 위태롭게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악사처럼, 매일이 위태롭지만 그래도 따뜻한 정으로, 사랑으로 살아가는 소박한 그네들의 삶이 희뿌연 이미지로 한번에 스며온다.

‘Sunrise, Sunset’ 등 오랜시간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던 뮤지컬 넘버들은 저마다의 개성이 아닌 하나의 흐름으로 다가온다. 이번 <지붕위의 바이올린>이 가진 특징 중 하나는 움직임이 큰 배우들의 군무 등 각 장면들과, 각각의 넘버들, 그리고 많은 인물들의 등장이 나름의 색깔을 비치기 보다는 저마다가 어울려 하나의 인상, 하나의 분위기로 엮어진다는 것이다.

다소 긴 러닝타임과 잔잔한 스토리로 인하여 위와 같은 조합은 ‘고요한 감동’과 ‘느린 전개’ 등 작품을 ‘양날의 검’의 형상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 사실. 관객들 하나하나의 가슴에 새겨질 장면이나 흥얼거릴 노래가 뚜렷하게 생기지 않는 것의 아쉬움과, 혹은 하나의 흐름으로 작품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드문 기회라는 만족감 중 어느 것을 취하는가는 관객들의 몫일 것이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다큐멘터리 허브(club.cyworld.com/docuher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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