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스케어리 걸> 달콤한 노래로 풀어지는 살벌한 사랑사

“암매장 시체가 나왔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눈물이 나요.”

암매장과 시체, 그리고 눈물까지 어느 하나 가볍게 넘길만한 말이 아니거늘, 객석에선 웃음이 터져 나온다. 끔찍한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고 있으나 달콤하고 상큼한 미소가 연신 지어지는 것, 바로 뮤지컬 <마이 스케어리 걸>이 가진 아이러니다.

나이 서른에 ‘키스 한번만’을 외치며 연애 경험 전무의 경력을 자랑하는 고지식한 대학강사 대우에게도 ‘미나’라는 빛이 찾아온다. 미술을 전공한 지적이고 도도한 그녀 미나에게 한 눈에 반한 대우는 전 인생을 지배해 온 자신의 이상형 기준도 순식간에 증발시켜 버린 채 눈과 가슴에 차오르는 하트로 벅찬 하루하루를 보내게 된다. 하지만 미나가 실상 대우가 생각하고 있는 모습과 정 반대라는 것에서 비극이 시작된다.


첫 사랑과 첫 키스를 안겨준 그녀가 그 사랑과 그 키스도 잃게 만드는 것, 긍정의 극대치와 부정의 극대치가 만나 예측 불허의 상황과 함께 오묘한 감정을 유발시키는 것을 <마이 스케어리 걸>이 가진 최고의 매력으로 꼽을 수 있다. 연애 경험 전무의 대우이기에 사랑에 빠진 그의 순진함은 더욱 사랑스럽고, 사람 처리(?)에 능숙한 미나이기에 더욱 대우를 원하는 모습이 애처롭게 다가오며, 누구는 웃고 또 누구는 우는 것이 이 작품에서는 결코 이상한 광경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 공연 전체의 이미지와 분위기를 좌우하는 음악을 빼 놓을 수 없다. 박용우, 최강희 주연의 영화 ‘달콤, 살벌한 연인’을 원작으로 했다지만, 뮤지컬 무대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이 ‘남다른 음악’ 덕분에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은 스토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도 영화의 이미지는 떠오르지 않는다. 재즈, 팝, 그리고 트로트를 포함한 한국 대중가요의 느낌까지 저마다의 넘버에 고르고 세련되게 실린 선율은 사랑에 얽힌 끔찍한 사건들을 감미롭고 발랄하게 풀어내고 있다.

사건 현장을 은폐하기 위해 얼렁뚱땅 등장해 버린 ‘여성전용’ 화장실 앞에서 대우는 쑥스럽고도 뿌듯하게, 깜찍 발랄한 클래식 선율로 “이 집의 화장실은 여성전용!”을 외치고, 김치 냉장고에 사람이 들락날락 하는 오싹한 순간에는 경쾌한 재즈 리듬이 반복되며 야릇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나와 떠나요, 이태리로~”를 부르면서 미나와 대우는 웃을 수 없지만, 노래는 푸른 들판을 희망의 가슴으로 내 달리는 상큼한 팝 발라드가 영락 없다.


소소한 재미가 있는 유기적으로 잘 짜인 이야기, 듣는 맛이 더한 음악에 살아있는 캐릭터까지 창작 초연이 쉽게 가질 수 없는 믿음이 곳곳에 있으나, 세로로 넓게 퍼진 무대의 쓰임은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디테일이 살아 있는 장면들은 극에 비해 다소 분산된 공간에 퍼져 관객들의 눈길을 놓친다. 공연의 문을 여는 5분여 남짓의 첫 장면이 낯설고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이유 중 하나도 이 공간일 것이다.

그러나 이 보다 더 완벽할 수 없는 섬세함으로 대우를 살리고 있는 김재범과 큰 키와 굵은 마스크로 의외의 귀여움을 발산하는 신성록, 맛깔스럽게 인물을 창조해 낼 줄 아는 방진의, 그 어떤 관객의 기억 속에도 자리하게 될 장미 역의 김진희 등 배우들의 호연이 더해져 뮤지컬 <마이 스케어리 걸>은 오랜만에 만난 웰 메이드 창작극으로 불림에 손색이 없다. 달콤함 가득한 이 살벌한 이야기들이 무엇보다 봄에 어울린다는 것에 이견은 없을 것이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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