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지점프를 하다> 탄탄한 무대 언어로 증명하고 있는 무비컬의 진화

인기 영화나 드라마를 바탕으로 한 뮤지컬들이 무대 위에서 원작만큼의 영예를 갖는 경우는 드물었다. 이미 검증받은 원작의 인기 요소들만 나열하여 뮤지컬로서의 완성도를 갖추지 못했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뮤지컬의 독립성만을 강조하다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친숙해진 원작의 장점들을 무리하게 거부한 것이 그 이유들이 아닐까.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는 먼저, 영화에 충실하겠다고 선언했다. 2년 전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워크숍 공연 당시 선보였던 구성은 본 공연에서 영화의 줄기를 순차적으로 따라가는 방법으로 전면 수정되었다.

인물의 캐릭터, 설정, 장면, 그리고 많은 부분의 대사들이 영화에서 만났던 모습, 느낌과 대단히 닮아 있다. 결과적으로 이는 <번지점프를 하다>가 뮤지컬로서 안정적이고 지혜로운 출발을 하는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전생과 환생, 그 연결고리를 알아보는 당사자의 혼란, 선생님과 동성 제자 간 사랑의 감정 등 약 10여 년 전 당시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 새로운 발상과 서정적 전개가 이 작품의 존재 이유며 가장 매력적인 부분이기 때문이다.

‘번지점프를 하다’를 뮤지컬이 아닌 다른 장르의 창작물로 만든다 해도 위와 같은 특징들을 거부하거나 새롭게 변신시키려 한다는 것은 원작의 특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위험한 발상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이 소위 말하는 무비컬로서도 마땅히 박수받을 부분은, 안아야 할 것은 확실하게 끌어안고 가져가고 있으면서 동시에 뮤지컬이라는 장르적인 특성을 십분 살려 빼어난 하나의 존재로 부활했다는 데 있다.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음악이다. 현악기가 바탕이 되어 빚어내는 음악은 풍부하게 공간을 채운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흐름이 작품의 이미지와 꼭 맞는다. 하지만 영화 속 명장면인 ‘왈츠’ 부분에서 이미 유명한 쇼스타코비치의 왈츠를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새로운 음악을 작곡하는 등 뮤지컬 넘버들은 스스로의 탄생이유를 갖고자 했고 이는 성공적으로 보여진다. ‘그대인가요’, ‘혹시 들은 적 있니’ 등을 비롯, ‘그런가봐’, ‘겨우’, ‘비난’ 등 하나의 이야기 속 연이은 곡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충분히 담고 있는 생명력으로 노래하고 있다.

무엇보다 아이러니하면서도 기막힌 묘미는 무대에 있다. 대단히 생략된 단순한 무대는 세련미를 더했고 무대에서만 가능한 약속들로 3차원의 공간 속에 자연스럽고 유연하게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무대 뒷면이 1막에서는 활짝 펴져 팽팽한 우산들로 채워져 있다면 2막에서는 고장 나고 살이 빠져 늘어진 우산들로 바뀌는 등의 섬세한 변화도 알고 보면 더 재밌다. 하지만 장면이 바뀔 때마다 소도구들을 직접 나르는 배우들의 등퇴장은 눈에 걸리는 부분이다.

대범한 조명의 사용은 극의 분위기 조성 및 전환에 큰 몫을 하고 있다. 다소 큰 느낌의 무대를 무형의 존재로 채워주는 것 역시 조명이다. 지극히 사실적인 무대와 대형 세트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낯설게 다가올 수도 있지만 스타일의 차이일 뿐, 그 어느 것이 맞고 오른 것은 결코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설정들이 충분한 효과를 발휘하는가이며, 이에 대한 <번지점프를 하다>의 대답은 매우 긍정적이다. 2막 교통사고 장면은 빈 무대에서 조명 만으로 영화적인 기법까지 연출해 낼 수 있는 걸 보여주는 좋은 예다.

두 명의 인우 중 강필석은 빼어나고 정확하게 캐릭터를 선사하고 있으며, 김우형에게선 사랑에 서툰 우직한 청년의 모습이 더욱 느껴진다. 상대에게 다가가거나 사랑에 솔직하게 나서는 전미도, 최유하의 태희는 영화에서보다 좀 더 적극적이고 당찬 매력을 지녔다.

하지만 영화를 보지 않았던 관객이라면, 머리가 아닌 그 무언가로 먼저 사랑을 알아차리는 디테일한 감정 변화를 뮤지컬에서 십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원작의 이야기를 담아내기에 과거 작품들에 비해 진일보한 것은 분명하나 영화 속 클로즈업을 대신할 무언가가 좀 더 필요한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지점프를 하다>는 다른 장르의 원작을 바탕으로 탄생한 창작 뮤지컬로서 그 가능성과 완성도에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 작품은 이전 작품이 무엇이었는지 헛갈릴 정도로 저마다의 매력과 존재 이유를 갖고 있는 원소스 멀티유즈의 탄탄한 작품이 탄생하는데 중요한 다리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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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1

  • force2** 2012.08.14

    여자친구와 함께 봤는데, 주옥같은 뮤지컬 넘버들에 감동, 10여년 전 영화를 보고 받았던 감동이 재현됨에 다시 한 번 감동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