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에서 만나는 영화감독 이창동의 시선,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 리뷰
- 2019.05.16
- 박인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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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닝’을 비롯해 ‘시’, ‘밀양’, ‘박하사탕’ 등의 영화로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찬사를 이끌어낸 거장 이창동 감독의 소설이 연극으로 만들어졌다. 두산아트센터가 ‘아파트’라는 테마로 진행하고 있는 2019 두산인문극장의 두 번째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이다. 15일 언론에 공개된 이 작품의 무대에서는 이창동 감독이 소설가 시절 빠르게 변해가는 한국 사회를 응시하며 꿰뚫어보았던 인간 내면의 공허한 풍경을 마주할 수 있었다. 원작의 여러 은유와 함의를 감각적인 무대 언어로 풀어낸 연출 방식도 눈길을 끌었다.
‘녹천에는 똥이 많다’는 이창동이 영화감독으로 데뷔하기 전인 1992년 발표한 단편소설로, 당시 한국일보 창작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소설을 무대화하는 작업에는 지난해 연극 ‘외로운 사람, 힘든 사람, 슬픈 사람’으로 ‘2018 올해의 연극 베스트3’를 수상한 윤성호 작가와 현재 공연 중인 ‘언체인’의 신유청 연출이 참여했다.
‘녹천에는 똥이 많다’는 이창동이 영화감독으로 데뷔하기 전인 1992년 발표한 단편소설로, 당시 한국일보 창작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소설을 무대화하는 작업에는 지난해 연극 ‘외로운 사람, 힘든 사람, 슬픈 사람’으로 ‘2018 올해의 연극 베스트3’를 수상한 윤성호 작가와 현재 공연 중인 ‘언체인’의 신유청 연출이 참여했다.
극은 배우들이 나레이션으로 녹천역 부근 동네의 분위기를 묘사하며 시작된다. 배경은 급격한 도시화가 진행되던 1980년대, 새로 건설된 아파트 단지와 똥과 오물이 질펀히 깔린 지저분한 공사장이 가까이 붙어있는 서울의 한 변두리 동네다.
주인공은 아내, 딸과 함께 이곳 아파트 단지에 갓 입주한 가장 준식이다. 유년기에 가난으로 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하고 급사 및 서무과 직원을 거쳐 교사가 된 그는 아홉 번 만에 당첨되어 분양받은 23평 아파트를 둘러보며 한껏 행복감에 부풀어 있다. 그런데 이때 수년간 만나지 못했던 그의 배다른 동생 민우가 준식의 집으로 찾아온다.
주인공은 아내, 딸과 함께 이곳 아파트 단지에 갓 입주한 가장 준식이다. 유년기에 가난으로 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하고 급사 및 서무과 직원을 거쳐 교사가 된 그는 아홉 번 만에 당첨되어 분양받은 23평 아파트를 둘러보며 한껏 행복감에 부풀어 있다. 그런데 이때 수년간 만나지 못했던 그의 배다른 동생 민우가 준식의 집으로 찾아온다.
민우는 형과 정반대의 인물이다. 어렸을 때부터 총명했던 그는 명문대에 들어가 현재 경찰에게 쫓기고 있는 강성 운동권 학생이며, 타협을 모르는 강직한 성격으로 어릴 적 생계를 위해 거짓말이나 도둑질을 했던 준식의 어머니에게 종종 창피를 줬던 인물이다. 어머니를 꼭 닮은 준식이 물질적 욕망을 좇아 적당히 시류에 타협하며 살아가는 다수의 소시민을 대표한다면, 아버지를 꼭 빼 닮은 동생 민우는 강한 정의감을 갖고 불의에 맞서는 소수를 대변한다.
이렇게 형과는 전혀 다른 민우가 들어오면서 준식의 가정에는 서서히 균열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순수하고 깨끗한 감성을 지닌 청년 민우를 보면서 준식의 아내는 허위 위에 쌓아 올려진 자신의 삶과 결혼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그런 아내의 변화를 감지한 준식 역시 혼란에 빠진다.
이렇게 형과는 전혀 다른 민우가 들어오면서 준식의 가정에는 서서히 균열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순수하고 깨끗한 감성을 지닌 청년 민우를 보면서 준식의 아내는 허위 위에 쌓아 올려진 자신의 삶과 결혼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그런 아내의 변화를 감지한 준식 역시 혼란에 빠진다.
극은 준식의 아파트 내부를 넓게 펼쳐놓은 듯한 무대 위에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펼쳐졌다. 무대는 준식의 학교 교무실이 되기도 하고 그가 어릴 적 어머니와 함께 김밥을 팔던 시장 좌판이 되기도 하는데, 그가 삶의 순간순간 느꼈던 수치와 오욕, 분노의 감정들이 변기 물 내리는 소리 등의 시·청각 요소들과 함께 더 극적으로 표현된다.
이같은 무대 활용은 극의 후반부까지 적절한 쓰임새로 인물들의 심리를 더욱 선명히 전달한다. 처음에는 준식과 아내에게 너무도 자랑스러운 공간이었던 아파트는 차차 이들에게 갑갑함을 느끼게 하는 공간으로 변해가고, 급기야는 무대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수족관처럼 구현해낸 조명과 사운드는 관객들로 하여금 준식의 모습 위에 그가 가져왔던 비닐봉지 속 죽은 금붕어들의 모습을 겹쳐보게 만든다.
이같은 무대 활용은 극의 후반부까지 적절한 쓰임새로 인물들의 심리를 더욱 선명히 전달한다. 처음에는 준식과 아내에게 너무도 자랑스러운 공간이었던 아파트는 차차 이들에게 갑갑함을 느끼게 하는 공간으로 변해가고, 급기야는 무대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수족관처럼 구현해낸 조명과 사운드는 관객들로 하여금 준식의 모습 위에 그가 가져왔던 비닐봉지 속 죽은 금붕어들의 모습을 겹쳐보게 만든다.
과하지 않게 적절히 활용된 내레이션도 인상적이다. 소설에서 그대로 가져온 문장들을 배우들이 곳곳에서 육성으로 전달하는데, 이는 극중 분위기와 각 인물들의 내면을 문학적 수사로 생생히 전달한다. 특히 준식이 아내와 오랜만에 정사를 치르거나 준식이 동료 교사들과 술집에서 술을 마시는 장면 등에서는 나레이션과 배우들의 연기가 어울려 노출 없이도 인물들의 달뜬 욕망과 무력감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수년 만에 찾아온 동생 민우 때문에 위기에 놓인 준식은 극의 결말부에 이르러 자신의 새 아파트에서가 아닌, 녹천역 부근 똥 구덩이 위에서 비로소 자신의 삶을 직시하게 된다. 그러나 이 극은 준식을 동생에 비해 마냥 어리석고 비겁한 소시민으로 그리지는 않는다. 영화 ‘밀양’에서 그랬듯, 이창동 감독은 시류에 휩쓸려 살아가는 대다수 사람들의 부박한 심리를 꿰뚫어보면서도 바로 그런 현실 위에 희망이 있음을 이야기했다. 거장의 치밀한 시선을 감각적인 무대 언어로 구현해낸 연극 ‘녹천에는 똥이 많다’는 6월 8일까지 두산아트센터 Sapce111에서 펼쳐진다. 준식 역 조형래, 준식의 아내 역 김신록, 민우 역 김우진을 비롯해 송희정, 하준호, 레지나, 우범진, 이지혜가 출연한다.
글: 박인아 기자(iapark@interpark.com)
사진: 두산아트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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