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에게 공감받는 순간이 정말 행복하죠” ‘난설’ 정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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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눈썹 때문일까, 어딘지 독특한 여운을 남기는 마스크와 매력적인 목소리를 가진 배우 정인지는 언제부턴가 관객들 사이에서 조용히, 하지만 또렷이 자신의 이름을 알려오고 있었다. 특히 많은 관객들에게 그녀의 이름을 알렸던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분기점으로 연극 ‘보도지침’과 ‘추남, 미녀’, 그리고 지난 겨울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여성 배우 10인의 활약으로 화제를 모았던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를 거치며 강렬한 변신을 거듭해온 그녀는 현재 창작뮤지컬 신작 ‘난설’과 ‘테레즈 라캥’에서 주역을 맡아 활약 중이다.

지난달 30일, 무대에서와는 또 다른 생기와 아름다움을 빛내며 인터뷰 자리에 나타난 그녀는 조근조근 따스한 어조로 ‘난설’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 이야기 속에는 허난설헌이라는 인물에 대한 깊은 애정과 경이가, 또 너무 무겁지 않게 배우로서의 삶에 임하려는 낙관과 분별이 스며 있었다.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다던 ‘난설’의 첫 공연을 떠올리며 “그런 순간이 정말 행복하죠”라고 미소 짓던 배우 정인지의 이야기.

Q 연습과정에서 허난설헌에 대한 많은 글과 자료들을 보셨을 텐데, 그녀와의 첫 만남은 어땠나요.
사실 허초희(허난설헌의 본명)에 대한 자료가 많지는 않아요. 내용이 한정적이기도 하고요. 그 중 가장 크게 대두되는 것이 아무래도 ‘삼한(三恨, 조선에 태어난 한, 여자로 태어난 한, 김성립의 아내가 된 한)’에 대한 것인데, 분노를 크게 느꼈어요. 그녀를 알면 알수록 마음이 많이 무거웠죠. 재능이 뛰어났지만 여자이기 때문에 겪을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해 접할 때마다 많이 속상했어요. 제가 워낙 (인물을) 접할 때 확 공감하고 같이 울기도 하는 성향이라, 어떤 부분은 잘 못 보겠더라고요. 마음이 너무 아파서.

Q 배우(예술가)로서, 혹은 여성으로서 허난설헌의 삶에서 특히 공감되거나 인상적이었던 지점은 무엇이었나요. 
그녀는 단지 시적 표현 능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자신이 무엇에 힘을 실을 수 있는지를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나이와 성별을 떠나 자신이 무엇을 잘 하는지, 그리고 그것에 자신의 정당한 목소리를 실었을 때 얼마만큼의 힘을 낼 수 있는지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요. 예술이라는 명목 하에 무언가를 표현하는 직업을 가진 분들은 다 공감하겠지만, 그런 사람이야말로 문화의 힘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배우라는 직업도 그 (표현의) 힘을 믿고 정당한 목소리를 낼 때 가장 효과적으로 힘이 발휘될 수 있는 직업이 아닐까 생각하거든요.

허초희는 여성의 인권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던 사람으로 알려져 있어요. 사실 엄청 큰 운동을 했다고는 할 수 없겠죠. 그 때는 자기 이름조차 제대로 가지지 못한 여성들이 많았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가진 힘이 ‘시’라는 것을 알았고, 그런 (문제의식을) 글로 써서 많이 남겼어요. 예를 들어 그녀가 쓴 시 중에 “여자는 자신이 입을 저고리를 지어도 그것의 주인이 되지 못한다”는 글이 있어요. 또 당시엔 여자가 결혼 후 남편에게 이런 행동은 해야 한다, 혹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조차 어려웠을 텐데, 그녀는 그런 내용을 시로 써서 남편에게 주기도 했어요. 그만큼 당시 상황의 문제점을 정확히 알고 있었고, 그것을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었던 용기 있는 여성 같아요.
 
▲ 뮤지컬 '난설' 공연 장면

Q 공연의 제목은 ‘난설’이지만, 극 중 허난설헌의 삶은 화자인 허균과 이달의 회상을 통해서만 그려지고 있습니다. 결혼생활을 비롯해 허난설헌의 삶 중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는 부분도 있고요. 혹시 아쉬운 점은 없었나요.
그런 아쉬움을 얘기하시는 관객 분들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어요. 저도 처음엔 그래서 작가님께 ‘이게 말이 되냐, 그녀의 억울함을 풀어달라’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는데(웃음), 작가님이 말씀하신 것 중에 한 부분이 저를 울렸고, 그 부분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어요.

작가님이 그녀의 삶을 계속 알아가다 보니 너무너무 마음이 아파서 이걸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더래요. 작가님도 분명 여성의 입장으로서 허초희가 더 많은 이야기를 자신의 입으로 풀어 내기를 누구보다 바랬을 거예요. 근데 그녀의 생을 들여다볼수록 그녀가 이 무대에서만큼은 시를 가장 좋아했던, 그래서 가장 행복했던 모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대요. 여기서만큼은 모두가 다 그녀의 시를 좋아하고, 같이 불러줬으면 좋겠다고요.

실제로 그녀가 결혼 후 쓴 애달픈 시들을 볼 때마다 저도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남편 김성립과의 생활, 시댁의 압박, 여러 번의 유산 등등…너무나 화가 나고 마음이 아파요. 그래서 어느 순간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로 다른 작품에서는 허난설헌이 직접 화자가 되어 등장할 수도 있고, 또 다른 이야기를 할 수도 있지만, 이 뮤지컬 안에서만큼은 그녀가 즐겁게 글을 쓰고, 자신의 재능을 누군가 발견해 주고, 모두가 나를 믿어주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그 행복감을 충분히 만끽하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연습하면서 더 짙어졌어요.

그래서 허난설헌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도 그녀가 시를 만나고 쓰고 표현할 때의 순수한 기쁨에 초점을 뒀어요. 성별을 떠나 그냥 한 사람으로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맞닥뜨렸을 때의 흥분과 즐거움을 표현하는 것에요. 그 부분이 가장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관객 분들도 ‘정말 저렇게 글 쓰는 걸 좋아하고 기뻐하는 사람이구나’라는 느낌을 받으실 수 있게끔.
 
Q 허난설헌의 시를 음악에 그대로 녹여내다 보니 운치 있는 가사와 대사가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특히 좋아하는 가사나 시구를 꼽는다면 무엇인가요.
노래는 아니지만, 극 중 허초희가 쓴 ‘유선사’를 셋이 함께 외는 부분이 있어요. “푸른 산 붉은 집들이 맑은 하늘에 잠기면 학은 단약 굽는 부엌에서 졸고 밤은 아득하기만 하다…” 처음엔 이게 어려우니까 잘 안 외워지는 거에요. 근데 하루는 연습을 마치고 집에 가면서 노을이 지는 하늘을 보는데 그 시상이, 그녀가 뭘 보고 있었는지가 확 느껴지는 거에요. 정말 귀뚜라미 소리도 들리는 것 같고, 학이 부엌에서 졸고 있다니 얼마나 노곤한 밤 하늘이며 또 얼마나 그 냄새가 구수할 것이며…자세히 묘사한 게 아닌데도 그 공기를 불러오는 듯한 글이어서 정말 천재가 아닐까 싶었어요.

Q 현재 여성 캐릭터가 타이틀롤인 두 작품을 하고 있고, 지난 겨울에는 여성 배우들만 출연한 ‘베르나르다 알바’에도 참여하셨어요. 요즘 공연계가 여성 캐릭터와 서사를 다루는 데 있어 어떻게 변화한다고 느끼시나요.
사실 그런 움직임은 5년, 7년 전부터 느꼈어요. 제가 리딩 공연을 좋아해서 여러 번 참여했는데, 젊은 창작자 분들, 그리고 리딩 공연을 보러 오시는 제작자 분들이 점점 더 다양한 이야기들에 관심을 가졌던 것 같고, 그게 작년이나 재작년쯤부터 (무대에서) 발화되어온 것 같아요.

근데 이걸 비단 ‘여성 서사’라고만 구분할 수 없는 것이, 요즘엔 젠더 프리 캐스팅도 굉장히 많잖아요. 그만큼 다양한 삶을 이야기하는 공연이 많아졌다고 생각해요. ‘베르나르다 알바’는 성별을 떼고 봐도 여러 인간 군상을 집약적으로 모아놓은 조직체계를 그려낸 작품이고, ‘테레즈 라캥’ 역시 성별을 떼고 봐도 욕망에 가득 찬 한 사람의 선택과 갈등에 대한 흥미로운 작품이고요.

우리가 설명을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남성 중심 서사’ 혹은 ‘여성 중심 서사’라고 이름을 붙였지만, 그런 구분을 떼어놓고 봐도 될 만큼 우리 주변에는 진짜 ‘사람’과 ‘삶’에 대한 더 많은 다양한 이야기가 있다고 봐요. 앞으로 1년이 다르고 2년이 다르게 더 많은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고, 그런 이야기를 과감히 올릴 수 있는 용기 있는 분들도 많았으면 좋겠어요. 그걸 소화해낼 수 있는 배우들은 정말 많거든요. 저도 있고요(웃음).
 
Q 2007년 ‘위대한 캣츠비’로 무대에 데뷔하신 후 2010년부터 4년간 공백기를 가졌다고 들었어요. 그동안 직장생활도 하셨다고요.
사실 제가 연기를 시작한 게 1997년, 14살 때였어요. 그리고 그만뒀을 때가 27살쯤이었는데, 돌아보니 이거 말고는 해본 게 없는 거에요. 물론 그 사이 학교도 다녔고 아르바이트 같은 건 해봤지만, 어쨌든 십 몇 년 동안 쭉 이쪽 계통에만 있었던 거잖아요. 그러니 뭔가 다른 걸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마침 그 때 했던 공연 페이가 지급되지 않았어요. 연습까지 합쳐서 4~5개월 작업이 진행됐는데 페이를 한 번도 못 받았거든요. 그래서 그만둬야겠다, 이건 내 길이 아닌 것 같다 생각하고 기독교 단편 영화를 만드는 작은 영화사에 취직했어요. 믿으실지 모르지만 엑셀 단축키의 천재가 되어(웃음) 도표도 만들고 기획서도 만들고 그랬죠. 그렇게 만든 걸 A4용지에 딱 맞게 프린트 하는 게 너무 기분이 좋은 거에요(웃음). 그렇게 3~4년을 일하다 다시 돌아왔죠.

Q 다시 돌아온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사실 계속 (연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일을 하면서도 애니메이션 녹음을 계속 했었는데, 그게 제가 (연기를) 완전히 놓지 못한 부분 중 하나였던 것 같아요. 근데 자존심이 있으니까 인정하지 않은 거죠. ‘인지야, 이미 넌 떠나 왔잖아’하면서 동대문 위쪽(혜화동)으로는 넘어 오지도 않으려고 했어요(웃음). 그랬지만 결국 하고 싶다는 마음을 인정했죠. 그리고 나서 오디션을 정말 많이 봤어요. 오디션에 지원해 놓고 겁나서 못 가다가 마침내 가기까지도 한참 걸렸고, 실제로 오디션에 합격해서 공연을 하기까지도 한참 걸렸어요. 그런 시간이 있었죠.
 
Q 만약 그런 시간이 없었다면 일을 바라보는 시각이 지금과 어떻게 달랐을까요.
아마 그 시간이 없었다면 배우라는 직업과 나라는 사람을 동일시했을 것 같아요. 그럼 이 직업이 없어지면 나도 없어지게 되는 거죠. 또 배우라는 직업이 그렇게 (동일시)하기 쉬운 환경에 있어요. 무대에서 어떤 인물을 구현해낼 뿐 아니라 그 인물에 대해 이렇게 무대 밖에서 인터뷰를 하기도 하고, 또 공연이 끝나면 무대 밖에서 저를 기다려주시는 분들도 있고요.
 
그런데 직장생활을 거치면서 그 구분이 제게는 명확해 졌어요. 저는 사실 되게 덜렁거리기도 하고 실수도 많이 하는 사람인데, 제 일을 대할 때는 스스로 완벽을 기하려는 성향이 있거든요. 그러니 나와 직업을 동일시하면 내 삶까지 너무 꽉 조여서 힘들어졌을 거에요. 그런 부분에서 좀 자유로워졌다고 할까, 조급해하지 않게 된 것 같아요.

Q 배우로 일하며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인가요.
최근에는 ‘난설’ 첫 공연을 올리고 관객 분들께 기립박수를 받았을 때였어요. 저는 첫 공연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무대 위에는 3명의 배우만 있지만, 무대 밖에는 그 공연을 준비하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분들의 모든 노고가 첫 공연에서 보인다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그날 그게 (관객들에게) 인정받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든 분들이 이 순간 행복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요 근래 중에는 가장 행복했던 것 같아요. 우리가 준비한 무언가가 모두에게 소통이 되고 공감이 됐을 때, 그 때가 정말 행복해요.
 

Q 앞으로 지켜나가고 싶은 원칙이 있다면요. 
모두가 동등한 입장이라는 생각이요. 우리가 일을 하면서 쉽게 사람을 선배 혹은 후배로 나누고, 또는 직급으로 사람을 나누기도 하잖아요. 근데 공연하면서 그건 정말 무의미한 것 같아요. 어떤 배우가 공연을 처음 시작했는데 저는 10년차가 됐다고 해서 과연 제가 그 배우보다 더 많은 것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 그건 아닌 것 같아요. ‘테레즈 라캥’에 처음 공연을 하는 친구가 있는데, 과연 내가 그 친구보다 삶의 질감이나 농도가 더 높다고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그건 아닌 것 같거든요. 이건 정답이 없는 직업이니까요.
 

더 많이 알고 적게 알고는 나이와 비례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근데 너무 쉽게 그렇게 접근하게 되더라고요. 허초희라는 인물을 바라보든 다른 무언가를 바라보든, 제가 나이가 많다고 해서 제 이야기가 정답이 돼버리면 안 된다는 것을 경계심을 갖고 생각하려고 해요.  
 

글: 박인아 기자(iapark@interpark.com)
사진: 배경훈(Mr.Hodol@Mr-Hod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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