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신영숙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다섯 번째 시즌 ’레베카’ 댄버스 부인으로 돌아오다
- 2019.11.13
- 강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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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인터뷰 한다는 것 자체로 영광이에요. 슈퍼스타가 된 것 같아요. 모든 작품 하나하나 열심히 하는데요. 특히 ‘레베카’는 제 지인들도 너무 재미있게 본 작품이고요. 관객들도 초연부터 너무 사랑해주셨고요. 노래할 때마다 관객들의 숨소리조차 안 들리고 몰입하게 만드는 댄버스라는 멋진 역할까지. 나에게 ‘레베카’는 자부심이에요. 관객들이 “잘 했어”라고 인정해 주신 것 같아서 이 작품을 만난 것이 정말 행운이고 감사하고, 꿈만 같아요.
‘레베카’는 ‘모차르트!’할 때 ‘레베카’의 작곡가 실베스터 르베이를 처음 만났는데, 그가 “네 음색이 서늘하고 센 편인데, 댄버스 부인이랑 잘 어울릴 것 같다”라고 이야기해줘서 알게 됐어요. 그 이야기를 듣고 오리지널 영상을 찾아봤는데 댄버스 부인 넘버의 멜로디가 제 가슴에 와서 박혔어요.
Q 댄버스 부인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초연과 어떤 점이 달라졌고, 이번에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고 있나요?
처음에는 댄버스 부인의 노래가 워낙 강력하니까 파워풀하게 전달해야겠다는 마음이 강했어요. 또 외적인 면을 신경을 많이 썼어요. 멋지게 보이려고 했던 것 같아요. 이제는 시간도 많이 흐르고 삶의 경험도 쌓여서 점점 내면 연기에 더 집중하게 되는 것 같아요.
눈만 희번득 하게 뜨는 게 아니라 왜 그런 눈빛이 나오는지, 댄버스 부인의 마음을 더 헤아려 보게 되고요. 그런 것이 깊이 있는 캐릭터를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레베카가 없는 슬픔을 표현하고 싶었다면 이번에는 분노가 많아졌어요. 댄버스 부인이 더 무서워 질지도 모르겠어요. 오늘도 오전에 연습하고 왔는데 저도 모르게 부들부들 사지가 떨리더라고요.
Q 댄버스 부인은 공연 시작 후 20분 정도 후에 등장하지만, 주변을 압도하는 에너지가 어마어마합니다.
댄버스 부인의 등장만으로도 주변 공기가 달라지고 서늘하게 만드는 그런 분위기를 표현하려고 애쓰고 있어요. 우리는 살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데, 모나고 각진 성격을 가진 사람들도 만나게 되잖아요.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아무것도 안 해도 불편하거든요. 댄버스 부인는 보기만 해도 가까이만 있어도 그런 불편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사람이에요. 이 여자가 특별히 뭘 해서라기보다는 잘못되고 병적인 신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옳다고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나오는 분위기가 온몸에 배어 있어요. 이런 것들이 걸음걸이만으로도 느껴질 수 있도록 다른 캐릭터들보다 등장은 늦지만, 그 상황 속으로 댄버스 속으로 완벽하게 들어가려고 무대 뒤에서 집중하고 있어요. 나를 긴장되는 상태로 만들어 놓으면 마음에도 날이 서고, 목에도 핏줄이 팍 서요.
Q 올해가 데뷔 20주년이에요. 앙상블부터 조연, 주연까지 단계별로 무대에 서고 있습니다.
요즘 많은 스케줄을 하다 보면 지칠 때도 있지만 정말 하루하루가 감사해요. 배우는 오디션 인생이에요. 한 작품 한 작품 갈급하게 해야 해요. 이렇게 작품을 쉬지 않고 하는 거 보면 지금이 전성기가 맞는 것 같아요. 인간 신영숙은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에요. 그렇지만 배우 신영숙으로는 완벽한 사람이고 싶어요. 영숙이란 이름처럼 인간 신영숙은 참 평범한 사람인데 "너 어떻게 이렇게 활동하고 있니"라고 스스로 질문할 때가 있어요. 전 스타도 아니고요. 방송을 하는 사람도 아니에요. '자기 관리도 잘 못하는 인간인데 어떻게 이렇게 뮤지컬 배우를 하고 있을까'라고 생각해보면, 전 가진 게 대단하지 않으니 정말 열심히 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고,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건 뮤지컬을 정말 사랑하고 또 사랑하다 보니까 그런 것 같아요.
이십 대 때는 오디션 떨어져서 울고 집에 갈 때도 많았어요. 또 잘난 줄 알고 기고만장할 때도 있었고요. 뮤지컬 전문 배우이다 보니까 인지도가 부족할 때가 많았어요. 지금보다 덜 알려졌을 때 오디션 1등을 했는데 인지도가 없어서 출연을 못한 적도 있어요. 선택되지 못한 것에서 오는 좌절감을 많이 느꼈죠. 그렇지만 기운을 낼 수 있었던 건 늘 관객들 때문이에요. 내가 사랑하는 일을 하고 있을 뿐인데, 관객들은 회사도 다니고, 학교도 다니고 공연하는 저보다 더 바쁘게 살고 있는데 그런 분들이 힘들게 티켓을 구해서 제 공연을 보고 힘을 얻고 간다고 하니까 정말 감사해요. '내가 사랑받고 있구나'라고 느낄 때 힘이 나요. 배우는 나를 봐줄 사람이 있어야 존재하는 직업이니까요.
‘캣츠’ 그리자벨라를 할 때가 30대 초반이었는데 그 나이에 하기에는 너무 큰 역할을 맡았어요. 오디션 1등을 했지만 인지도 없는 배우한테 역할을 줬기 때문에 극 중에 부르는 곡은 ‘메모리’ 하나뿐인데도 그걸 정말 잘하고 싶어서 무진장 애를 썼어요. 공연 기간 내내 분장실에 불을 끄고 다른 배우들과는 말도 안 섞고 ‘메모리’에 모든 걸 쏟아부었어요. 전 참 밝고 긍정적인 사람인데 그 당시 우울증 걸릴 뻔 했어요. ‘레베카’ 초연 때는 오리지널 영화를 매일 집에 틀어놓고 그 분위기를 느끼려고 했어요. 댄버스 부인은 예민한 여자니까 ‘몸을 차갑게 하고 가야지’라고 하면서 샤워도 찬물로 하고요. (웃음) 그렇게 뭔가 오바해서 했던 시절도 있어요. 그런 경험이 쌓여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Q 30대 후반부터 여성이 타이틀 롤이 되는 주인공을 하기 시작했어요.
늦게 피는 꽃처럼, 거꾸로 가는 시계처럼 오히려 40대에 와서 주연을 많이 하고 있어요. 보통 여배우와는 조금 다른 행보죠. 예전이나 지금이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최선을 다해서 연기하는 것. 그거 하나예요. 그러기 위해서 부족한 게 있거나, 연습이 끝나도 확인이 안 서면 연기나 노래 선생님 등 각종 선생님을 찾아다녀요. 이십 대 때는 코믹하고 재미난 역할을 많이 했고, 그러다가 처음 진지한 역할도 하고요. 제 스펙트럼을 점점 넓혀갔어요.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늦게라도 기회가 온 것 같아요.
Q 배우 인생에서 가장 기억나는 때는 언제인가요?
예전부터 꿈꿔 오던 역할이 엘리자벳인데요. ‘엘리자벳’ 제작사인 EMK에서 작품을 가져오기도 전에 오스트리아에서 공연이 올라갔을 때 제 팬이 그 공연을 보고, 우리말로 다 번역해서 책을 만들어서 저한테 선물을 했어요. 엘리자벳 초상화에 제 얼굴까지 합성해서 이 역할에 정말 잘 어울릴 것 같다고 꿈을 심어줬어요. 작년에 드디어 ‘엘리자벳’과 만나게 됐는데, 십 년 가까이 한결같이 응원해준 팬과 ‘엘리자벳’ 첫 공 후에 공연장 로비에서 다 같이 눈물바다가 돼서 기쁨을 같이 공유한 적이 있어요. 꿈의 무대를 팬들이랑 함께 만든 것 같아서 그때가 잊히지지가 않아요.
Q 황금별 여사, 마마님 등 팬들이 붙여준 애칭이 많아요.
요즘에는 저희 팬들이 마마님이라고 불러요 그 전에는 신여사님이었어요. 제가 이십 대부터 최근까지 남작부인, 공작부인 등 무슨 부인 역을 정말 많이 했어요. (웃음) 황금별 여사는 '모차르트!' 할 때 남작부인 역으로 나와서 '황금별'을 불렀는데, 그 곡으로 황금별 여사라는 애칭이 생겼어요. 마마는 30대 초반에 서울예술단에서 뮤지컬 '이'라는 작품에서 '장녹수'를 했는데, 그때 팬들한테 녹수마마라고 불리고 그때 팬카페가 처음 생겼어요. 너무 소중하고 고마운 팬들이에요.
Q 앞으로 어떤 배우로 남고 싶나요?
제가 했던 역할 중에 ‘팬텀’의 마담 카를로타라는 역할이 있어요. 코믹한 배역인데 그 끼를 마음껏 무대에서 펼치면 정말 행복해요.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무대에서 다 풀 수 있어요. 코믹하지만 좀 못된 역할인데도 박수를 엄청 받고요. 그리고 이 역할로 뮤지컬 여자배우상, 신스틸러상도 받았어요. 코미디를 사랑해서 앞으로도 그런 역할이 있다면 도전하고 싶어요. 이십 년 동안 배우 생활을 하니까 작품도 인연이 되는 시기와 때가 있는 것 같아요. 40대에 16살 소녀 엘리자벳을 하게 되는 것처럼요. 제가 꿈꿔왔던 작품을 늦게나마 하나하나 이뤄가고 있는 지금이 정말 행복해요. 앞으로도 더 꿈꾸고 도전해서 건강하게 배우 생활을 하고 싶어요. 그리고 나에게 희망을 줬던 어른들처럼 관객들이나 후배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배우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지금처럼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면 앞날도 전성기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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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진이 기자(jini21@interpark.com)
사진: 기준서 (스튜디오 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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